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 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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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
저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은 겸손할 수준도 안 되는 사람의 겸손은 건방이라 하셨지요. '내가 이렇게 큰일을 했는데 왜 사람들이 존경을 표하지 않지?' 하는 식의 과도한 자기애와 욕망을 직접 드러내기엔 너무 위험하니, 이를 정반대로 표현하는 방어기제, 즉 반동 형성 (reaction formation)에서 비롯한 것이 겸손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겸손을 표해도 될 만큼의 대단한 뭔가를 정말로 해내고 나서야 그때 비로소 겸손해지면 됩니다. 사소한 성취에 대한 사소한 칭찬은 그냥 받아들입시다.
"계급장 다 떼고, 이른바 '스펙' 하나 드러내지 않고서 다른 사람과 마주했을 때,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곧 자존감입니다."
'진심'이 언젠가 통할 것이란 믿음은, 실은 내 생각과 감정과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비대한 자의식에서 비롯합니다.
나와 영혼이 통하는 소울메이트를 찾는다는 건 언뜻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자기애에 바탕을 둔 태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거기엔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상대를 원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의 성격적 단점에도 내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이지요
자신의 완벽주의가 진짜 완벽주의인지, 게으름에서 비롯된 잘못된 습관인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우유부단하고 잘 미루는 습관일 뿐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완벽주의자로 라벨링 하면 타인에게 그럭저럭 잘 포장되어 보인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완벽을 기하려는 자기 모습에 즐거워하고, 완벽 '비스무레'한 상황에 즐거워하고, 완벽하지 못한 결과에 남 일인 듯 깔깔댈 때 완벽주의는 '최적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내가 그 일을 해내면 좋겠지만, 아니면 마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 마음에 들면 좋겠지만, 아니면 마는 것입니다.
이번의 시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좋겠지만, 아니면 또 마는 것입니다.
어쩌다 나의 노력 덕분에 일이 잘 된다면, 나는 작은 자기 효능감 하나를 챙기고 다음 일을 도모하면 됩니다.
만일 안된다면? 그러면, 그냥 마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내가 불행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다한 후에 '그래서 어쩌라고?' 정신으로 다른 즐거움을 찾아내어 즐기면 됩니다.
낙관주의적 백일몽에 빠져 있는 시간은 무력감을 배우는 시간일 뿐입니다.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일 에너지는 줄어들고 자신에 대한 평가는 더 가혹해져 손에 남는 결과물은 적습니다.
당신은 어른이면서도 순진하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면서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어요. 세상의 무신경함과 잔인함에도 꼿꼿이 일상의 정돈된 루틴을 유지하는 자신의 노력에 새삼 뿌듯해하며, 늦은 밤 맥주 한 캔을 다고 요즘 한참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스타벅스 쿠폰을 문득 보내는, 어른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분위기를 멀리하세요.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할 때 경험하는 희망의 무게는, 다른 사람이 가벼이 여길 만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더욱 어른스러워야 합니다.
우리가 쏟아붓는 노력이 변하지 않는 상수라 해도,
(사실 일단 우리 노력도 상수일 리는 없습니다. 월요일과 토요일이 다르고, 아침 9시와 저녁 9시가 다른 인간의 의지를 절대로 과대평가하지 마세요.) 타인의 역사와 역동은 너무 큰 변수입니다. 대인관계에서 미완으로 남는 일은 모두에게 무수히 많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그동안 많은 운이 따랐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내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며 시니컬한 농담에 웃을 수 있었던 인지적 자원과 신체 기능,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일이 낯설지 않을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인프라 경험, 부모의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거나 우울에 관한 글을 스스로 적어 내려갈 수 있는 언어적 표현력, 그리고 타인의 무례함을 인식하고 불쾌해할 수 있는 도덕적 수준 같은 것들은, 물론 당신이 노력해서 성취한 부분도 있겠지만 운에 기대에 얻게 된 부분이 더 큽니다.
- 저자
- 허지원
- 출판
- 김영사
- 출판일
-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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