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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by 나 현재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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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저자 : 은희경

국내도서 > 소설 > 한국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44; 은희경

하이라이트

'보여지는 나'는 나라기보다는 나로 보이고 싶어 하는 나이다.

부부가 침대에서 격렬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당연히 받지 않는다. 둘 중 누군가가 발가락을 뻗어 코드를 빼버린다. 일을 다 마친 다음 전화기 코드를 다시 꽂자마자 요란하게 울려대는 전화 소리. 아버지의 부음이었다. 자기들이 쾌락에 몸을 떠는 바로 그 순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죄책감에 몸부림 치며 운다. 특히 발가락으로 코드를 뽑았던 사람은 상대방에게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더욱 크게 통곡한다.
부부의 정사와 아버지의 죽음, 그 두 사건 사이에는 개연성도 인과 관계도 없다. 그런데도 그 우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고통받아야만 한다면 논리학에서 말하는 '근거 없는 비난 오류'가 아닐까.

예의 있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그처럼 성의를 다함으로써 상대를 즐겁게 할 줄 안다.

현석이 나를 강하게 볼수록 나는 그 앞에서 강하게 보이려고 의식을 할 것이다. 그런 한편 그가 사랑하는 것은 비겁한 진짜 나가 아니라 내가 그에게 보이려고 했던 작위적인 나일뿐이라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다.

불순한 외박을 추궁당하지 않으려는 데 급급해 친구의 인격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릴 만큼 사람은 이기적이다.

사랑에 있어, 사려깊은 불안이나 비탄보다 철없이 행복을 먼저 취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윤선의 능력이다.
이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아닌지 따져보는 데에 사랑할 시간을 다 써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랑은 누가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오는 운명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사랑을 하고 안 하고는 취향이며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엄연한 능력이다.

그런 날이 있다. 불편듯 누군가를 생각했는데 바로 그 사람에게서 소식이 오는 날.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안 그래도 니 생각 했는데 뭐가 통했나보다, 라고
그것은 늘 그리워하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을 때도 곧잘 하게 되는 말이다. 그렇기 않아도 당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우리 사이에는 특별한 주파수를 감지하는 텔레파시가 있나봐요. 사실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상대를 생각하고 있고 그에게 연락이 오는 순간도 예외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랑할 때 누구나 겪는 자기 최면이다.

섹스는 몸의 친근이다. 사람을 가까워지게 만들고 때로는 사랑하게도 만든다. 사랑하게 되어 섹스를 원하는 것이 순서이겠지만 먼저 섹스를 공유한 뒤에 사랑에 빠지는 일에도 많은 진실이 있다. 우정이나 호감을 사랑으로 바꾸어주는 것도 섹스이고, 교착된 관계를 결정적으로 밀착하거나 끊어지게 만드는 것도 섹스의 영역이다. 술에 취했거나 어떤 충동에 휘말려 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께름칙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순서에 맞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또 그렇게 했는데도 사랑이 시작되지 않는다 해서 희한에 빠지는 일도 우습다. 그때는 그냥 조금 더 친해진 것뿐이다.

사랑이란 자꾸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다. 그래서 뻔히 아는 사실인 '사랑한다'는 말을 자꾸만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이고 선물을 주고 싶어지며 호출기에 '잘 자라'는 메시지를 남기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러고도 마음속의 것을 아직 다 털어내 보인 것 같지 않아 미진한 것이 사랑이다.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소설가 은희경의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사랑과 결혼의 일반적 통념을 과감하게 뒤집으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모색한 장편소설이다. 결혼에 실패한 후 어느 한 남자에게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사랑을 갈구해가는 주인공 진희의 삶을 그려낸다. 허위나 변덕과 같은 심리적 착종에서 빚어지는 매혹적인 광경이 인간의 현실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
은희경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2.05.25